살랑 살랑, 따스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쓰다듬습니다. 치아키는 한 손으로 카나메의 교복 옷자락을 잡고 입으로는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을 뭅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청량한 하늘과 반팔 교복을 입어도 춥지 않은 기온이 뚜렷한 여름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카나메가 이끄는 자전거가 부드럽게 페달을 움직이며 나아갑니다. 바퀴가 천천히 돌아갑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도착해야해요.
온 세상을 울릴 듯 요란한 음악 소리. 부족함 없이 준비된 음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차리고 꾸민 뒤 들떠 있는 사람들.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이루어진 이 모든 것은 오직 당신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은 용을 만나러 가는 당신을 온 국민이 모여 축하하는 날이거든요. 50번째 제물이 된 당신은 선택되거나, 혹은 다른 이 대신 제물로서 선택되길 희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모습으로 치장한 당신은 흰옷을 입은 신관들을 따라 용이 계신 신전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축제라고 하기엔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만발하는 것이… 당신의 죽음을 즐거워하는 것 같지 않나요?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거니까요. 자아, 어서 용을 맞이하러 가요, 탐사자.
"아, 안 잔다니까!" 또 시작입니다. 침대 밑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느니, 꿈에 괴물이 나온다느니, 잠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느니, 온갖 핑계를 들어가며 잠들지 않으려고 하는 저 도련님(도련님)말이에요. 보수가 월등히 많은 탓에 이 깊은 숲속까지 들어와 저 막무가내 도련님의 어리광을 수년째 받아주고는 있지만, 이젠 정말 관둘 때가 된 걸까요. 이 저택의 사용인인 탐사자는 오늘도 깊은 한숨을 쉬며 KPC를 달랩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범인을 색출해내는 기술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범죄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죠. 경찰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기어 다니는 죄 많은 그들…… 아, 물론 동정하는 건 아니에요. 정의로운 신입 형사인 당신에게 죄는 뿌리 뽑아야 할 악덕이며, 악당은 혼쭐을 내줘야 할 불량 씨앗이니까요. “그런데, 벌써 몇 번째 검거에 실패하는 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쾅, 상사가 책상을 크게 내리치며 분통을 터트립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아침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문이 펼쳐져 있습니다. 1면에 들어간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유명한, 팬텀 블루 미스트의 화려한 예고장입니다. 어렵게 꼬아놓은 퀴즈나 수수께끼도 없이, 정정당당하게(이 말을 써도 괜찮을까요?)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어느 장소에서 보아요!” 발송된 예고에는 언제나 그렇듯 푸른 안개꽃이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이왕 친절하게 예고장을 보낼 거라면 뭘 훔쳐 가는지도 말해달라고!” 그렇습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범인을 색출해내는 기술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범죄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죠. 경찰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기어 다니는 죄 많은 그들…… 사이에서도, 경찰을 우롱하며 훨훨 날아다니는 푸른 안개의 괴도! 이번에는 꼭, 반드시…… 그를 붙잡아 보이겠어요!
사제복을 입은 미친 이를 보았습니까? 황무지만이 남은 이 세계에서 사람을 찾아 홀로 떠돌던 당신의 앞에 나타난 무너진 성당과 그 성당의 주인. 그는 곧 당신의 얼굴을 보고 울더니, 웃더니,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센트럴 런던, 코벤트 광장을 지나면 작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그곳은 알록달록한 건물로 이루어진, 닐스 야드라는 거리입니다. 코벤트 광장을 산책하던 당신은 그 골목길을 발견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돌연 안개가 가득 끼더니, 이내 거리에 있던 수많은 관광객들과 행인들이 사라집니다. 당황하기도 잠시, 당신의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뜹니다. 알고 있는 이름. 그건 KPC입니다. [ 어디야? 당황했어? 괜찮아. 내가 안내하는 대로만 오면 돼. 닐스 야드 세 블록 앞에서 만나. 가는 길은 내가 가르쳐줄게. 전화, 끊지 마. ]
손에 닿은 피부가 서늘했다. 창 밖의 바다는 유난히 창백했고. KPC과 탐사자는 올해의 겨울 휴가를 위해 바닷가의 호텔에 방문했습니다. 바다는 아름답고, 호텔의 시설은 완벽하지만…… 코가 잘려나갈 정도로 흉포한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 탓에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덕분에 정경이 완벽한 방을 얻을 수 있었으니 행운일까요? 창밖으로 넓은 바다가 펼쳐집니다. 흰색에 가까운 색 바랜 모래사장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고즈넉한 겨울의 바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풍경…… 물속의 것들도 모두 잠들거나 죽었을 계절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바다의 마지막을 목격하는 중일지도 몰라요. 짠 내음이 나는 물 대신 애매한 감성에 젖었을 때, 인터폰이 울립니다. “룸서비스가 도착했습니다.”
늦은 밤, 걸려온 전화에 탐사자는 잠에서 깹니다. 소중한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불안한 호흡, 떨리는 목소리… 그 끝에 들려온 것은 “…나 사람을 죽인 것 같아. 지금 와줄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생명에 치명적인 충병이 유행 중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kpc 또한 이주 전 쯤부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습니다. 아직 위험성이 밝혀 지지 않았기에 병원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허가를 받은 환자의 간병인들만이 출입이 가능하다 합니다. kpc는 괜찮은걸까요? 조금 걱정이 되는데... 그리고 탐사자는 오늘, 병원에서부터 느닷없이 kpc의 간병인으로서 채택되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