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이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알던 것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존재마저 사라져버린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있을까요. 사실 종말은 이미 우리의 생을 집어삼키고 잠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아가는 자여, 그 무게를 견뎌라. 모든 것의 시작을, 그 행동과 말의 무게를, 그리고 종말의 기원을. qui cupis gerere coronam, pondus eius sustine.
람피온의 저택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여름도 서늘하더니 겨울은 얼어붙을 것처럼 날씨가 지독하다. 숲에는 눈이 잔뜩 쌓여서 한 발자국도 디딜 수가 없다. 언제나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요즈음은 더 그렇게 느껴져서 답답…… “모카, 혹시 게일 봤어?” 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허전하다. 마틸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옆방에 사는 게일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저택이 이렇게 넓었던가? 머릿수가 드문드문 모자라다. 게일만이 아니었다. 람피온이 사라졌다. 실종사건이다. 공포로 뒤통수가 쭈뼛해졌을 때, 나는 보았다. 선생님의 시선이…… 정원, 람피온의 덩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처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마태 7, 16~17)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젖은 생쥐 꼴로 달려들어 온 우체부가 내놓은 소식은 일주일 째 이어진 궂은 날씨보다 더 충격적이었죠. -경, 실족으로 사망. 아, 그는 분명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이어져, 피가 섞이진 않았다지만.. 분명 아버지, 가족이지요. 어지러움에 휘청이는 어머니를 붙잡아 위층으로 올려보내면, KPC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옵니다. 그는 묘하게 올라간 입꼬리로 말합니다. “ 장례를 치러야겠네요. 그렇죠, 탐사자? “
까만 정장을 입은 KPC가 말을 내뱉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몇백년 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왔던 가문의 역사와 괴이의 기록. 괴이에 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최전방에 서서 괴이를 퇴마(退魔)해왔던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정부가 우리한테 그걸 숨기고 있다는 거야.” KPC는 빛바랜 종이 조각을 건넵니다. 종이는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낡고, 얇습니다. 종이 조각에 적힌 것은 단 다섯 글자. 그마저도 몇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잘려있습니다. 추측하건대, ‘本自同根生’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탐사자들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무엇이?
아직은 쌀쌀한 초봄, 기분 전환 삼아 혼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던 리히터는 여행 일정이 다 지나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먼저 연락이 왔던, 당신이 연락을 보냈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내보니 좋은 곳 같아서, 여기서 살기로 했어. 아예 이쪽으로 이사해서 그곳에 있는 짐은 모조리 버리고 여기서 새로 살거야. 앞으로 보기 힘들겠네. 갑작스러운 결정입니다. 이렇게 대책 없는 결정을 할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당황한 당신은, 시간을 내서 직접 그곳에 방문해보기로 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던, 적어도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던. 떠나는 길에는 얕은 비가 내립니다.
1학년을 보낸 여러분은 이제 어엿한 2학년 학생입니다. 겨울을 맞이하여 성 이그문트 학교의 축제중 하나인 [인비에르노]의 준비로 분주합니다. 축제에 참가하여 콘테스트에 우승하고, 시합에 참여하여 MVP가 되세요. 무도회에 참여하여 학생들의 인기를 얻어 퀸과 킹이 되세요! 그리고 그런 여러분은 "그"의 부름에 또다시 한 곳에 모이게 됩니다. 또 이 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우리는 무사히 졸업 할 수 있을까요? 이곳은 정말 안전한 학교가 맞는걸까요?
사연국嗣聯國 황실 직속 최고의 화백 KPC. 그의 화폭이 한 켠의 극락 같고, 때로는 나락 같으며, 흐드러지는 낙폭의 흐름이 마치 한 떨기 연꽃 같다 하여 붙여진 호 연제莲帝, 연꽃의 왕. 황제가 그를 어여삐 여겨 친히 제왕의 호를 직접 지어 하사하였으니, 황궁 안 그의 손끝이 닿지 아니한 곳이 없어 처마 끝부터 마당 앞까지 찬란한 한 무리의 연꽃 같았습니다. 그러나 KPC에게 있는 한 가지 단점이라면, 천재의 광기가 언제나 그렇듯이, 바로 습작을 언제나 사람의 몸 위에 해야한다는 것. 그 사람의 몸마저 아무 몸을 쓸 수 없어, 온 나라에서 황명으로 신분에 상관 없이 아름다운 이를 모아 직접 제 도화지를 고릅니다. 그리고 이번 KPC가 직접 고른 이가……. "그리 긴장할 것 없네, 내게는 자네의 몸이 희기만 한 종이와 다를 것이 없으니." "자네의 몸이 종이가 되고, 내 손이 붓이 되는 거지.“ 탐사자, 바로 당신입니다.
오래된 숲 속에 있는 고아원. KPC와 탐사자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입니다. KPC가 탐사자에게 어렸을 적 부터 지독한 소유욕과 집착을 드러낸 건 고아원 사람들이라면 전부 알 만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집착이 과연 KPC만의 것일까요?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겨울. 계절이 지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나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 겨울이 지나면 탐사자는 성인이 됩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범인을 색출해내는 기술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범죄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죠. 경찰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기어 다니는 죄 많은 그들…… 아, 물론 동정하는 건 아니에요. 정의로운 신입 형사인 당신에게 죄는 뿌리 뽑아야 할 악덕이며, 악당은 혼쭐을 내줘야 할 불량 씨앗이니까요. “그런데, 벌써 몇 번째 검거에 실패하는 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쾅, 상사가 책상을 크게 내리치며 분통을 터트립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아침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문이 펼쳐져 있습니다. 1면에 들어간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유명한, 팬텀 블루 미스트의 화려한 예고장입니다. 어렵게 꼬아놓은 퀴즈나 수수께끼도 없이, 정정당당하게(이 말을 써도 괜찮을까요?)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어느 장소에서 보아요!” 발송된 예고에는 언제나 그렇듯 올리브색 안개꽃이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이왕 친절하게 예고장을 보낼 거라면 뭘 훔쳐 가는지도 말해달라고!” 그렇습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범인을 색출해내는 기술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범죄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죠. 경찰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기어 다니는 죄 많은 그들…… 사이에서도, 경찰을 우롱하며 훨훨 날아다니는 푸른 안개의 괴도! 이번에는 꼭, 반드시…… 그를 붙잡아 보이겠어요!